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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마지막 날에서 새해로 넘어왔을 때 어땠더라. 날이 바뀌는 것은 늘 겪지만, 해가 바뀌는 건 한해가 끝날 때와 새해가 오는 하루밖에 느낄 수 없다. 하루가 아니고 이틀인가, 마지막 날과 첫날. 그날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지만 마음은 좀 다르다. 어렸을 때는 학년이 올라가서 안 좋다 여겼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좀 먹으니 또 한살을 먹는구나 했다. 이건 아주 잠깐이었다. 언제부턴가 내 나이를 잊어버렸다. 가끔 내가 몇 살이지 하고 바로 떠올리지 못하고 잘못 계산하기도 한다. 이룬 건 없고 나이만 먹어선지, 그런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딱히 나이를 생각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어서다. 그러면 자주 나이를 생각하는 사람 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것도 가끔이겠지. 나한테는 나이를 생각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겠지. 결혼하고 아이가 있으면 그럴 것 같기도 한데. 난 달력을 보고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하지만,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가 자란 걸 보고 느낄 것 같다. 새해를 말하다 이런 말을 하다니. 이번 악스트는 올해 첫달 첫날 나왔다(책 속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이것은 루시드 폴 CD와 함께 샀다. 지난 일월 새벽에 책 산 일이 떠오르기도 하다니. 그때 루시드 폴 CD가 다시 나오는 거였는데, 나온다고 한 날보다 늦게 나왔다. CD랑 함께 사서 악스트도 늦게 받았다. 바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악스트 세번째도 안 봤을 때였다. 늦게 본 배경 설명이라니. 올해 일월을 생각한 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가 아니고 마지막 글을 봤을 때다. 새해를 말하기보다 2015년을 돌아봐서. 그 글은 2015년 12월에 썼기 때문이겠다. 지금은 새해가 오고 몇달이 흘렀다. 몇달 동안 뭐 하고 지낸 건가 싶다. 뭐 하고 지냈느냐 하면 책 읽고 지냈다.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내가 올해 만난 책에는 여전히 소설이 많다. 소설이 아닌 다른 걸 보면 자꾸 그런 것만 보고, 다시 소설을 보면 소설만 본다.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아직도 그때그때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소설도 다르게 보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 소설(시)은 다른 걸 잘 몰라도 읽을 수 있다. 다른 것을 알면 좀더 깊이있게 보거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것보다는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보고 싶다.    앞에서 조금 이상한 말을 꺼냈다. 네번째 악스트를 보기 전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난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 마음이 좁아서인지 단단하지 못해서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자신의 다친 마음을 책으로 낫게 하기도 한다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걸까. 내가 책을 보는 건 거기에서 눈을 돌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으로 달아나는 게 나쁠까. 현실에 짓눌릴 것 같은 마음을 책으로 펴도 괜찮겠지. 그런 책도 좋다고 생각한다. 백가흠은 듀나한테 작가가 해야 할 일을 물어보았다. 짧게 썼지만 긴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듀나는 그런 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작가라는 생각이 없다고 했다. 글을 쓰는데 작가가 아니라니. 그래도 그 말 나쁘지 않았다. 그런 걸 말하다니. 다른 것보다 마감이 기억에 남았다. 마감이 다가올 때 글을 쓴다는. 마감이 있어서 글을 쓰는 사람 많을 거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글도 있겠지. 난 듀나 책은 하나도 못 봤지만 이름은 안다. 어쩌면 한권쯤 봤지만 잊어버렸는지도. 어떤 소설 맨 뒤에 쓴 글 본 건 생각난다. 듀나라는 이름 알았을 때 떠오른 건 배두나다. 그래서 듀나도 여자 작가가 아닐까 했다. 듀나가 한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 얼마 전에야 알았다. 듀나는 실제 만나지 않고 글로만 말을 나눴다고 한다. 한때는 얼굴 없는 가수가 나왔다. 음악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면 얼굴을 드러냈는데, 듀나는 아직도 얼굴 아는 사람이 없는가보다. 그렇게도 글을 쓸 수 있구나. 잘 쓰니 원고를 부탁하는 거겠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듀나가 누구였다는 게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명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글을 만나는 시간이 즐겁기를 바라고 쓰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에서도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도 생각할거리를 던진다. 만화 많이 모르고 많이 만나지 못했는데 이런 말을 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을 말한 사람도 있다. 여섯번째에서도 그랬는데. 난 그런 거 못한다. 한번 쓰면 다시 못 쓰고. 아주 가끔 두번 쓸 때도 있지만, 처음 쓴 것과 비슷하다. 글을 전문으로 쓰는 사람은 자신 없는 말은 쓰지 않겠지. 그것도 있고 책을 남다르게 보기도 하겠지. 최은미와 김종옥 이야기도 있다. 본래 두 사람이 나왔다는 게 떠올랐다. 흔히 우리는 어떤 걸 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어떤 걸 하지 않아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말 인상 깊다. 이 말은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김종옥)을 읽고 쓴 글에서 보았다. 둘은 아주 다른 말은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하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일이 적으면 좀 나을까. 언제 이걸 볼까 했는데 마음먹고 봐서 잘했다 싶다. 기분이 아주 좋아진 건 아니지만, 그건 시간이 흐르면 좀 낫겠지. 나한테는 책과 시간이 약이다. *더하는 말 이걸 올리려고 해서인지 루시드 폴을 잠깐 말해서인지 루시드 폴이 앞집에 사는 꿈을 꾸었다. 만나지는 않고 그냥 앞집에 산다고 했다. 그다음에는 어딘가 이상한 곳으로 갔는데, 어쩐지 무서웠다. 그곳은 어딘지 잘 모르겠다. 가야 할 곳으로 잘 가지 못한 건지도. 가려고 하는 곳에 잘 가지 못하는 꿈은 뭘까. 그러고 보니 그런 꿈 자주 꾸는 듯하다. 실제 나는 길 잘 몰라도 그냥 간다. 그렇게 해도 가야 할 곳에 잘 찾아간다. 시간이 걸리고 좀 힘들지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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