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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iooiiuh 2023. 6. 9. 22:51

‘여행에 관한 생각의 백과사전’이라는 제목으로 독후감을 썼던 <여행자의 책>의 저자 폴 서루의 단편집 <세상의 끝>을 만났습니다. 20대 초반에 아프리카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30대부터는 영국에 살면서 여행을 다니고 여행기를 썼는데, 아직 그의 여행기는 읽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프리카 방랑>이 소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끝>에는 표제작인 ‘세상의 끝’을 시작으로 모두 14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무대 혹은 등장인물이 경험한 장소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장소가 분명치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만, 첫 번째 ‘세상의 끝’의 경우 런던에 있는 구역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저자 자신이 여행을 통해서 가본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옮긴이는 ‘변경지대의 씁쓸한 풍경화’라는 제목의 후기를 “폴 서루의 단편소설들은 대체로 상징적 의미에서 ‘세상의 끝’에 놓인 인물들을 그려낸다. 그들은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혼란과 좌절을 겪기도 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381쪽)”라고 시작합니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것이 대개는 낯선 곳에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일인데, 특히 저자처럼 자유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하겠습니다. 옮긴이는 이어서 ‘폴 서루는 이 단편집에서 자의로든 상황에 의해서든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군상에 초점을 맞추고 이주자들의 행각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도 때로 공감적으로, 때로는 냉담하고 신랄하게 서술한다’라고 정리합니다. 하지만 문화가 다른 탓인지 읽는 입장에서 쉬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런던에 있는 세상의 끝이라는 구역으로 이주한 부부와 여섯 살난 아들의 한 가정이 가장의 의도와는 다른 결말로 치닫는 것을 보면, 과연 미국인 가정이 거처를 나라밖으로 옮기는 것을 가장 혼자서 결정했을까? 그리고 이름처럼 세상의 끝이라는 동네에서는 동네사람들이 각자 섬처럼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 와중에 아내와 아들은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다는 설정이 낯설어 보인다 하겠습니다. 코네티컷주에 있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마르세유에서 아내가 ‘자기 삶을 살고 싶다’는 이유로 남편을 떠나고, 그렇게 혼자된 남편은 코르시카를 여행하면서 음식점에서 일하는 프랑스 유부녀를 유혹해서 달아나는 장면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보니 불문학교수는 12년의 결혼기간 언행이 일치하지 않아서 부인과의 관계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고, 프랑스 여인 역시 코르시카 태생의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염증을 내던 참이었던 것이 함께 달아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목처럼 ‘말은 곧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던가 심지어는 섬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고 즉흥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이 과연 성공할까 싶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특유의 기생충-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파리의 유충이라고 했습니다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하얀 거짓말’에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버림받은 여자들이 자기를 속인 남자에게 유산된 태아를 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리지 않은 셔츠를 입으면 파리의 유충에 감염되어 온몸이 종기가 돋아나는 비상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은 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를 다녀오기 전에 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아프리카 여행을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선택한 소설집 여행 문학의 거장 폴 서루가 그려낸 이상하고 쓸쓸한 세계 여행 문학의 거장 폴 서루의 국내 첫 출간 소설집. 런던, 파리, 독일, 아프리카, 코르시카 섬, 푸에르토리코 등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한 열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행 작가이자 소설가인 폴 서루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소설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일본어로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외로움과 소외감, 호기심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공존하는 ‘세상의 끝’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깊은 사유와 예리한 통찰로 그려낸다.

세상의 끝
좀비들
임피리얼 얼음 상점
야드 세일
방정식
영어의 모험
종전 후
말은 곧 행동
하얀 거짓말
클래펌 정션
잡역부
여인의 초상화
자원 연설가
가장 푸른 섬
감사의 글

옮긴이의 말 | 변경지대의 씁쓸한 풍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