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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여전히 계속되는 이념의 비극 - 윤흥길 「장마」 외할머니의 꿈 외할머니가 불길한 꿈을 꾸었다. 아래위 합쳐서 7개밖에 안 되는 이 가운데서 그나마 실하게 붙어 있던 이빨 하나를, 무쇠로 만든 커다란 족집게가 난데없이 입 안으로 들어와 우지끈 잦뜨려놓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외할머니는 손으로 더듬이 이가 그대로인지 점검했다. 거울까지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살뜰히 살피기도 했다. 이는 빠지지 않은 채로 있는데, 외할머니는 자꾸만 꿈 이야기를 하며 불안해했다.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외할머니는 느끼고 있는 것일까? 꿈이 현실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어느 경우에는 꿈이 어떤 일을 예시하는 경우도 있다. 왜 하필 튼실한 이가 빠진 것일까, 하고 묻는 순간 외할머니는 깊이 모를 두려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어머니가 외할머니의 불안감에 불을 붙인다. 육군 소위를 달고 일선 소대장으로 나간 외삼촌을 입에 올린 것이다. 외할머니의 축 늘어진 양쪽 볼에 심한 경련이 일어난다. 외할머니는 지금 튼실한 이를 외삼촌과 동일시하고 있다. 차마 그것을 말로 꺼내지 없어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말을 못 들은 척 넘긴다. 외삼촌은 외할머니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들은 집안의 뿌리가 아닌가. 입 속에 있는 실한 이빨과 집안을 지탱하는 아들이 묘하게 하나로 이어져 외할머니를 불안에 떨게 한다. 아들이 잘못 되면 집안의 핏줄이 끊어지는 것이다. 집안 핏줄을 끊어놓고 어떻게 죽어서 조상들 얼굴을 볼까. 실한 이빨이 빠지는 꿈에서 시작된 외할머니의 상념은 집안 핏줄 문제와 이어져 더욱 깊어만 간다. 집 바깥에서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인민군이 북으로 밀려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쟁 중인 상황이다. 해가 다 진 이 시간에 비까지 억수로 내리는데, 저 사람들은 지금 누구네 집을 찾아가고 있는 것일까? 방안에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아, 사람들 발자국이 외할머니 집 앞에 멈춘다. 밖에서 아버지 이름을 부른다. 아버지가 집안 단속을 하고 대문으로 나간다. 외할머니는 방안에서 진즉부터 기별이 올 줄 알았다며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고 중얼댄다. 어떤 기별을 말하는 것일까? 혹, 전쟁터에 나간 외삼촌과 관련된 기별인 것일까? 아버지가 종이쪽지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외할머니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완두콩을 까고 있다. 입으로는 계속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내뱉는다. 어머니가 참지 못하고 흐느낀다. 어머니가 기어이 통곡을 터뜨린 상황에서도 외할머니는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을 반복한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어미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저 깊은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버렸을 것이다. 어머니처럼 통곡이라도 하면 막힌 속이 조금이나마 뚫릴 수 있으련만, 외할머니는 한없이 지독한 아픔을 온몸으로 삭이고 있다. 이토록 큰 상처를 품은 몸이 과연 남아날 수 있을까? 가슴에 맺힌 한(恨)은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야 한다. 그런데도 외할머니는 그 한을 자꾸만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려고 한다. 왜냐고? 아들 잃은 슬픔을 마음 깊이 품고 살아가기 위해서다. 당연히 외할머니가 사는 삶은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이 눈에 비친 집안의 비극 전쟁이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죽여야 할 적을 살려두고 어떻게 내가 살 수 있단 말인가. 전쟁이 일어나면 그래서 피바람이 분다.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 끊임없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념으로 해서 발생한 한국 전쟁 역시 이러한 전쟁의 의미망을 그대로 따른다.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이 한쪽은 자본주의를 수호한다고, 다른 한쪽은 공산주의를 수호한다고 싸웠다. 일상은 사는 사람들에게 관념뿐인 이념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권력자들이 후방에서 발 뻗고 잠을 잘 때, 권력이 없는 민중들은 전선에 나가 상대를 향해 총구를 겨누어야 했다. 이념 전쟁을 일으킨 권력자들 대신 이념과 상관없는 민중들이 이념을 이유로 죽어나갔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서도 한국사회는 아직도 이념의 탈을 벗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한국전쟁은 일어난 것인지. 윤흥길은 장마에서 아이(동만) 서술자의 눈으로 이러한 전쟁을 그리고 있다. 동만에게 전쟁은 건지산에 오른 봉홧불 이미지와 이어져 있다. 건지산 정상에서 장난처럼 불길이 오르면 읍내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져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다. 아이는 건지산에서 피어오르는 불길과 읍내에서 벌어진 시가전을 하나로 묶을 사유 능력이 없다. 아이는 그저 일어나는 상황을 받아들일 뿐이다. 상황을 해석하는 기준인 이념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얘기다. 시가전은 건지산에 숨은 빨치산과 국군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이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어른들은 빨치산이든, 국군이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달라질 수 있다. 아이가 보는 전쟁과 어른이 보는 전쟁이 이토록 다르다. 윤흥길은 아이의 시선을 선택하여 이념에 물든 어른들의 시선을 비껴가고 있는 셈이다. 외할머니는 서울 집을 떠나 할머니 집에 피난을 왔다. 외삼촌의 전사 소식을 외할머니는 할머니 집에서 들은 것이다. 할머니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외할머니와 작은이모를 살갑게 맞았다. 삼촌이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고, 외삼촌은 국군에 입대하는 묘한 상황에서도 두 사돈은 의좋게 지냈다. 이념으로 세상을 나눌 사돈들이 아니지 않는가. 의좋던 사돈의 관계는 동만이 형사의 꼬임에 빠져 삼촌이 집에 온 사실을 발설하면서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동만을 과자 한 조각에 삼촌을 팔아먹은,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꾸짖는다. 삼촌 문제로 아버지가 경찰서에 잡혀가 고문까지 받았으니, 할머니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손자를 닦달할 만했다. 외할머니가 유일하게 궁지에 몰린 동만을 감싸 안았다. 누구 하나라도 아이를 위로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두 사람을 갈라서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외삼촌의 전사통지서가 온 다음 날 일어났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는 그날, 외할머니는 벼락까지 내려치는 건지산을 보며 “어서 쏟아져라! 어서 한 번 더 쏟아져서 바웃 새에 숨은 뿔갱이마자 다 씰어 가그라! 나무 틈새기에 엎딘 뿔갱이 숯뎅이같이 싹싹 끄실리라!”라고 외쳤다. 빨갱이에 외삼촌을 잃은 외할머니 입장에서는 당연한 외침이었다. 소리를 듣고 마루로 몰려나온 식구들이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는 찰나, 안방 문이 우당탕 열리며 “저 늙다리 여편네가 뒤질라고 환장을 혔댜?” 하는 할머니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외할머니가 죽으라고 외친 빨갱이 속에는 할머니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외할머니가 이 상황을 알고 일부러 빨갱이는 다 죽어야 한다고 외친 것은 아니다. 외할머니는 그저 아들을 죽인 빨갱이들이 한없이 미웠던 것이다. 내내 참고 있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한을 토하듯 외친 것인데, 할머니는 그것을 삼촌 죽으라는 말로 듣는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빨갱이가 모두 죽으면 북으로 올라간 삼촌 또한 죽어야 하지 않는가. 이념에는 무관심한 두 사람이 아들 문제가 걸리자 이내 서로 각을 세운다. 외할머니는 전쟁 통에 죽은 아들 때문에 한이 맺혔고, 할머니는 자기 아들 죽으라는 사돈 소리에 기겁을 한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하나가 살려면 다른 하나는 죽어야 한다. 삼촌이 살려면 외삼촌은 죽어야 하고, 외삼촌이 살려면 삼촌이 죽어야 한다. 외할머니가 사과를 않자 할머니 입에서 기어이 외할머니를 내보내라는 얘기가 터져 나온다. 외할머니도 이판사판이다. 생때같은 아들 잃은 것도 서러운데,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나가라고 하니 얼마나 화가 치솟겠는가. 할머니는 더럽고 창피해서 ‘이런 집’에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그러면서 그예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만다. “이런 뿔갱이집……”에서 외할머니 말이 갑자기 끊긴다. 그리고는 말을 흐리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다가, 한참 동안 동만을 눈여겨본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무서운 소리를 했는지 외할머니는 말을 뱉고 나서야 깨닫는다. 빨갱이 집으로 몰리면 집안사람들 전체가 몰살을 당한다. 이후로 외할머니는 입을 꽉 다물고 오로지 완두콩만 깐다. 스스로 저 깊은 침묵의 세계로 빠져든 것이다.할머니의 굳건한 믿음 삼촌이 집에 들른 날, 식구들은 삼촌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귀순한 사람을 경찰이 마구잡이로 죽인다는 삐라를 산에서 본 삼촌은 완강하게 자수를 거부한다. 삼촌도 살고 싶다. 젊은 나이에 허망하게 산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쩌나,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다. 빨갱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들이 산 생활까지 한 삼촌을 그냥 놔둘 리가 없다. 가족들이 끈질기게 설득을 하자 삼촌은 결국 자수를 결심했다. 지금 당장 자수하기보다 이틀 정도 동정을 살피기로 했다.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윗옷을 벗던 삼촌이 갑자기 몸을 엎드려 방바닥에 귀를 댔다. 밖에서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산 사람의 예민한 감각으로 삼촌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로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미 잠에서 깨어난 동만도 어디선가 귀에 익은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는 걸 느꼈다. 삼촌이 몸을 일으키더니 뒷문으로 급하게 빠져나갔다. 동시에 동만 또한 밖으로 나갔다. 부엌을 돌아 안마당으로 달려가서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반쯤 열려 있던 사랑채 방문이 소리 없이 닫히는 게 보였다. 사랑채는 외할머니가 사는 방이다. 이 늦은 시간에 외할머니는 왜 안방 동정을 엿본 것일까? 자수를 결심한 삼촌은 그 이후로 집에 오지 않았다. 형사는 동만을 초콜릿으로 유혹해 삼촌이 집에 온 사실을 알아냈고, 아버지를 경찰서로 잡아갔다.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초췌한 모습으로 두부를 세 모나 날것으로 먹었다. 동만은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 매를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면서 아버지는 동만에게 한 달 동안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동만은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형사가 왜 초콜릿을 내밀며 삼촌 소식을 묻는지도 알지 못한다. 아이는 경찰서에 끌려간 아버지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에 돌아온 상황이 무섭고 슬프기만 하다. 하면 안 될 말을 자신이 발설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아이는 알고 있다. 아이는 그래서 아버지의 매를 기다린다. 차라리 매를 맞고 잘못했다고 말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매를 들지 않는다. 초콜릿으로 아이를 꼬인 형사가 문제라는 걸 아버지가 모를 리 없다. 전쟁을 모르는 아이는 이렇게 저도 모르게 전쟁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총알이 어디 어린아이라고 피해 가던가. 어른들이 일으킨 이념 전쟁에 애꿎은 아이만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할머니는 과자 하나에 삼촌을 팔았다며 손자를 거들떠도 안 본다. 자연 외할머니가 동만을 챙긴다. 동만의 집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암시하기라도 하듯 장맛비는 계속해서 내린다. 또 다시 읍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읍내에 다녀온 동네 사람 하나가 집에 들러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준다. 읍내 곳곳에 빨치산 시체들이 널려 있단다. 동네 사람은 아버지에게 빨리 읍내에 나가 보라고 한다. 혹여나 모르니, 삼촌의 시체를 찾아보라는 얘기겠다. 아버지는 다음 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읍내로 나간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할머니는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타박한다. 할머니는 삼촌이 살아 있다는 걸 철석같이 믿고 있다. 소경 점쟁이가 그리 말했다는 것이다. 소경 점쟁이는 삼촌이 ‘아무 날 아무 시’에 돌아온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점쟁이의 말을 ‘신탁(神託)’처럼 믿는다. 신탁이란 신이 인간에게 전한 하늘의 뜻을 의미한다. 미신이라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할머니는 지금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점쟁이의 말처럼 삼촌이 아무 날 아무 시에 기적처럼 나타날지도 모르지 않는가. 읍내에 나간 아버지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할머니의 믿음은 더욱 더 깊어진다. 이윽고 할머니는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합장한 두 손바닥을 불이 나게 비벼대면서 샘솟듯 흘러내리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늙고 추한 얼굴을 들어 꾸벅꾸벅 수없이 큰절을 해가면서,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하고 부처님께 감사하고 신령님께 감사하고 조상님네들께 감사하고 터줏귀신에게 감사하면서, 번갈아 땅바닥과 천장과 사면 벽을 향하여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뺑뺑이질을 치면서 미쳐 돌아가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가진 소박한 신앙과 모성애가 우리 모두의 가슴 구석구석을 뜨겁게 적시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믿기로 했다. 할머니는 믿기 위해 믿는 것이다. 과학적인 증거가 있어 믿는 게 아니라 믿어야 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가족들도 할머니를 따라 믿기로 한다. 할머니 말마따나, 아무 날 아무 시가 되면 삼촌이 멀쩡한 몸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기로 한다. 할머니의 믿음 속으로는 이념이 들어설 틈이 없다. 믿음은 이념 이전에 있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할머니는 그저 하늘과 땅과 부처님과 신령님과 조상님들을 향해 수없이 큰절을 하며 기도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신들을 향해 간절하게 기도를 올림으로써 할머니는 인간의 힘으로는 이루지 못할 일을 반드시 이루려고 한다. 할머니는 무엇보다 이 믿음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견디고 있다. 믿음은 이미 할머니의 몸과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외할머니는 외할머니대로 완두콩을 까며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 사람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고, 한 사람은 죽은 아들의 저승길을 애도한다.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아들을 기리는 마음이 다를 수는 없다. 외할머니는 동만에게 외삼촌 이야기를 자꾸 들려준다.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할머니가 아들이 선택한 이념에 연연하지 않듯, 외할머니 또한 아들이 선택한 이념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아들의 무사함을 빌고 또 빌었을 뿐이다. 한 아들은 이미 죽고, 다른 아들은 아직 생사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남은 생을 어떻게든 견디려 하고 있다. 한 사람은 기도를 하며 견디고, 다른 사람은 아들 이야기를 하며 견딘다. 전쟁의 비극은 전장에서 죽는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지만, 후방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들의 애달픈 마음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구렁이 울음소리 소경 점쟁이가 예언한 ‘아무 날 아무 시’가 점점 다가온다. 삼촌의 목숨 줄이 이 날에 달려 있고, 할머니의 목숨 줄 또한 이 날에 달려 있다. 계속되는 장맛비에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는 잠긴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도 할머니 믿음은 굳세다. 할머니는 아무 날 아무 시가 되면 돌아올 아들이 불어난 강을 건너지 못할까 걱정이다. 광 속에 넣어둔 겉보리 가마가 썩어 집안사람들이 바쁜 와중에도 할머니는 오직 아들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아들을 맞을 때 입을 한복을 마름질하고, 삼촌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틀 후면 쉬어터질 호박전을 한 광주리나 장만한다. 할머니의 목숨과 삼촌의 목숨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삼촌이 죽으면 할머니도 살지 못할 것이다. 이래저래 할머니는 지금 목숨을 걸고 삼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모성애에 감동한 가족들은 이제 현실감을 되찾았다. 할머니 정성이 갸륵해 묵묵히 따르기는 하지만, 삼촌이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는 걸 가족들은 잘 알고 있다. 어린 동만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할머니의 신앙이―그것은 완벽한 하나의 신앙이었다. 그리고 신앙도 아주 이만저만한 신앙이 아니었다―우리에게 남긴 뜨거운 감동에서 벗어나 한 발짝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거울 앞에 선 듯 사정이 너무도 명백해지는 것이어서 할머니와 한가지로 낙관적이 될 수 없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할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가족들은 할머니를 따를 뿐이다. 한 발짝만 물러서도 할머니의 믿음이 얼마나 근거 없는 믿음인지는 어린 동만의 소견으로도 금방 판별된다. 초콜릿으로 동만을 속인 형사는 여전히 집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는 간혹 아버지를 불러내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는 했다. 아버지가 형사와 만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동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죄책감에 떨어야 했다. 할머니는 삼촌을 팔아먹은 놈이라며 아직도 손자를 멀리 한다. 동만의 죄책감이 얼마나 심하냐면, 아이는 할머니의 저주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주검을 앞에 놓고 서럽게 우는 할머니를 상상하며 아이는 감미로운 기분에 젖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삼촌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면 동만의 죄책감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아이는 누구보다 삼촌이 돌아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삼촌 문제는 할머니와 삼촌 두 사람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의 운명을 거머쥔 특별한 계기가 되어버렸다. 삼촌이 돌아오기로 예언된 전날 밤, 외할머니 곁에 누운 동만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식구들이 모두 깨어 있을 텐데도 집안은 너무나 조용했다. 문득 날카로운 줄칼로 사물의 귀퉁이를 참을성 있게 깎아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치와 귀뚜라미 울음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그 소리를 오래도록 음미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이상스런 소리가 끼어들었다. 아이들이 병 주둥이를 입에 대고 장난으로 부는 소리와 흡사했다.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그 소리는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처럼 은은하게 들렸다. 동구 밖 강 언덕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집 텃밭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동만은 소름이 돋을 만큼 음산한 그 소리에 매혹되어 정신을 온통 빼앗겼다. 구렁이 우는 소리라고, 외할머니가 말했다. 구렁이가 뱀들을 모으기 위해 우는 소리라는 말을 듣고 동만은 구렁이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제 몸을 친친 휘감는 기분이 들어 숨을 내쉬기 힘들었다. 이모가 동만을 끌어안는다. 이모의 품안에서 동만은 다시 먼 바다에서 울리는 뱃고동 같은 그 소리를 다시 듣는다. 소리가 저 멀리로 사라지자 외할머니가 동만을 부른다. 그리고는 묻는다. 삼촌이 위험해진 게 자기 탓이냐고? 동만의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게 아니다. 삼촌이 온 그날, 외할머니는 소피가 마려워 밖에 나왔다가 안방에 불이 훤해 무슨 일인가 싶어 잠깐 들여다봤을 뿐이다. 그것이 그만 삼촌을 자극해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아니었더라도 삼촌은 산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말한다. 그게 삼촌의 운명이라는 것. 외할머니 가슴에 맺힌 한이 얼마나 깊은지 이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겠다. 구렁이로 돌아온 삼촌 아무 날 아무 시에서 아무 시는 진시(辰時, 오전 9시~11시)였던 모양이다. 이 시간이 되자 마을사람들이 모여든다. 가족들에게는 삶과 죽음을 오가는 날이지만, 마을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재미있는 날이다. 사람들은 점쟁이의 말이 실현될지 궁금하다. 오전 9시가 지나 10시가 되어도 삼촌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족들이 늦은 아침을 드는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한사코 조반상을 받지 않는다. 할머니는 아무 시는 지났지만 아무 날은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오늘 중으로 아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할머니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 아무 시에 안 오면 아무 날을 기다리면 된다. 아무 날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믿는 마음이다. 믿어야 삼촌이 돌아온다는 이 간절한 믿음이라니. 갑자기 밖에서 함성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동만네 집 쪽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저마다 손에 돌멩이 아니면 기다린 나뭇개비 같은 것을 들었다. 아이들은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일까? 한 아이가 힘껏 돌팔매질한 자리에 꿈틀꿈틀 기어오는 기다란 것이 보인다. 구렁이다. 간밤에 울음을 울던 그 구렁이인가? 몸에 한기를 느낀 것도 잠시 동만은 지게 작대기를 들고 아이들과 합세한다. 자기 쪽으로 오면 단매에 요절을 낼 양으로 작대기를 쥔 양쪽 팔을 높이 들었는데, 누군가 동만의 팔을 움켜잡았다. 외할머니였다. 동시에 등 뒤에서 누군가 숨넘어갈 듯한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할머니였다. 비명을 내지르며 할머니는 마루 위로 고꾸라졌다. 한순간에 집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가족들이 졸도한 할머니는 돌보는 사이, 외할머니는 비명소리를 듣고 몰려든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냈다. 그리고는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구렁이는 그 사이를 틈타 텃밭 이랑을 지나 감나무에 올라앉았다. 밖에 있는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지자 외할머니는 호통을 쳤다. 주변이 잠잠해지자 외할머니는 감나무 아래로 가 구렁이를 사람인 양 대했다. 할머니를 얘기하고, 다른 가족들을 말하는 걸 보면,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집에 오기로 한 삼촌으로 대하는 게 분명하다. 구렁이가 어떻게 삼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기복신앙을 떠올리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집 밖에서 횡사한 사람은 뱀의 몸에 영혼을 실어 집안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그러니까 죽은 삼촌의 영혼이 뱀에 실려 돌아온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는 이 마음상태를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한다. 샤먼(shaman)은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이다. 땅에 사는 인간은 샤먼을 통해 하늘의 뜻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할머니는 지금 샤먼이 되어 죽어서도 저승으로 가지 못한, 한 맺힌 삼촌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려고 한다.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의식이니 얼마나 성스러운 의식인가. 구렁이를 향해 돌을 던져서도 안 되고, 헤픈 웃음을 내보여서도 안 된다. 외할머니가 좋은 말로 타일러도 구렁이는 꼼짝하지 않는다. 울 밖에 있던 아낙네가 구렁이를 쫓으려면 여자의 머리카락을 태워야 한다고 말한다. 외할머니는 안방으로 가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얻어서는 불씨가 담긴 그릇에 넣었다. 단백질을 태우는 노린내가 멀리까지 진동하자 꼼짝 않고 있던 구렁이가 땅바닥으로 내려와서는 외할머니에게로 다가온다. 외할머니가 길을 터주자 구렁이는 누런 비늘 가죽을 번뜩거리며 마당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이데올로기의 비극. 한국적 리얼리즘의 적자(嫡子) 윤흥길이 써내려 간 분단문학의 걸작.

「장마」가 강렬하게 호소해 오는 것은 토착적인 한(恨)이다. 그 토착적인 한은 「장마」에서 묘사되는 한국인의 근원적 정서뿐 아니라, 그것이 6.25 또는 분단의 현실적 비극에서 솟아나고 있다는 그 역사성에 의해 높이 평가된다. ―김병익(문학평론가)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나오리라고 기대했던 제대로 쓴 소설, 그리고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숨은 작가와의 상면을 뜻한다. 나는 「장마」에 흠씬 젖은 채 혼자 웃다 울다 하느라고 담배 한 갑을 다 태웠다. ―이문구(소설가)


장마
양(羊)
제식훈련 변천약사
몰매
빙청(氷靑)과 심홍(深紅)
날개 또는 수갑
돛대도 아니 달고
땔감
무제(霧堤)
기억 속의 들꽃

작품 해설
묘사와 실험/천이두
작가 연보

 

말할까? 말까?

말할까? 말까? - 비밀, 어렵고도 신중한 주제~~* 저 : 하이케 브란트* 역 : 송소민* 그림 : 수잔네 괴히리* 출판사 : 주니어김영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 말을 하기 까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고 심적으로 고생을 했을지... 임금님은 옷을 벗고 있어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아요. 왜 아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어른들은 보인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분명 안 입은것 같은데 임금이니 어쩔 수 없이 입었다고 해야 했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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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BAEK HYUN) - 미니앨범 2집 : Delight [커버 3종 중 랜덤 1종 발송] [스마트 뮤직 앨범(키트 앨범)]

백현 (BAEK HYUN) - 미니앨범 2집 : Delight [커버 3종 중 랜덤 1종 발송] [스마트 뮤직 앨범(키트 앨범)]교환하기 힘듭니다. 중복나오게하지말아주세요.주문번호 Y0226597521 입니다.커버 다 다르게 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ㅜㅜㅜ커버 교환은 정말 답도 없이 힘들어요ㅜㅜ 그러니 커버라도 다 다르게 보내주세요..>>>진짜 진짜 간곡히 부탁드리는 겁니다. 커버 교환이 정말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드니 3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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