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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몇년 전이다. 그때는 서평을 쓰지 않던 시기라 이 책 역시 기억에 느낌만 남아있었다. 오늘 책장 정리하다 눈에 쏙 들어 와 다시 꺼내들었다.이 책과 함께 온 신문형식의 부록에 가만한 이라는 표현이 문법에 맞지 않아 제목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이 나왔다고 했던 기억이 멀리서 떠올랐다. 출판사 책소개에서 제목에 대해 다음과 적혀 있다.세상을 뜬 이들을 추억하려고 한다. 동시대를 살아 든든했고 또 내내 고마울 이들을 기억하자는 취지다. 문패는 김완수 시인의 시 들꽃 에서 얻어왔다. “꽃을 꺾어내면 / 들 한쪽이 가만히 빈다 / 아무도 모르게 저를 키워와선 이렇게 꺾인다 / 어쨌든 이렇게 꺾어지고 나면 / 애초에 없던 약속마저 애처롭다.” 그렇게 빈자리에 또 아름다운 것들이 가만히 자리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가만한 당신’ 연재를 시작하며외신 부고를 일삼아 읽고 끌리는 이들을 골라 소개하는 한국일보 가만한 당신을 연재하는 최윤필 기자. 잘 알려진 이가 아니지만 우리를 대신해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가치와 권리를 쟁취하고자 우리보다 앞서 싸워준 이들의 부고에 보충자료를 찾아 정리하여 그들의 삶을 전달해 준다. 책머리에 의이 책의 어떤 대목이 읽을 만하다면, 책 속 그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한 세상이 아름다워서일 테고, 책 바깥 독자들의 세상이 너무 고약해서일 테다. 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서른다섯 명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는 카추파이다. 1966년 남키부 주 카타나에서 태어나 결혼해서 네 딸을 두었다 꽤 넉넉히 생활하던 중 1988년 제2차 콩고전쟁이 발발했다. 무장 반군이 들이닥쳤으나 도망갈 곳이 없었고 그들은 모든 걸 강탈했다. 총으로 죽여달라는 남편을 그들은 칼로 조각조각 내 죽이고 그 조각들을 그녀에게 모으게 한 뒤 그 위에 그녀를 눕혔다. 열두 명째에 이를 무렵 옆방 열다섯 살, 열세 살 딸과 그녀의 여동생 목소리였고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6개월 뒤 병원에서 깨어난 그녀는 두 딸의 임신한 배를 봐야했다. 남편 가족들은 그녀에게 강도들과 내통해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냐며 남편의 재산도 다 팔아치웠다. 옷 가방 하나들과 마을에서 쫓겨난 그녀는 강간 후유증으로 자궁 적출 수술을 받는다. 그 상황에서도 그녀는 강간 피해 여성 자활 운동을 시작하고 기부금으로 땅을 사 자활 농사짓고 수확물을 판매해 자활 공동체를 꾸려나갔다. 강간당한 여성, 고아들,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망아가 되었다. 2006년 이후 무려 세 차례나 더 집단 강간을 당했고 그녀의 어머니도 일을 돕다 강간 살해당했다. 다른 이의 어려움을 살피다 몸을 못챙겨 2016년 말라리아 합병증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삶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가슴 아플 뿐이었다. 자신의 삶을 한탄만 하기 보다 그때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달려가 그녀. 많은 생각이 든다.나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이가 있는데 바로 스텔라 영(1982-2014)이다. 호주의 코미디언 겸 방송인 칼럼니스트였다. 불완전골형성증이란 희귀 유전병을 가지고 태어난 장애인이다. 여든 살의 나에게 라는 칼럼에서 나는 이세상에 잘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니야라고 한 말은 진심이고 여든 살의 나를 만나러 가는 동안 모든 가능성을 움켜쥐고 늘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지혜롭게 즐겁게 살겠다고 약속하겠다고 글을 남겼다. 하지만 32세에 숨을 거두어 여든 살의 자신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는 나는 당신들에게 영감이나 감동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비장애인의 이익을 위해 장애인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이고 열다섯 살짜리 소녀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침대에 앉아 드라마를 봤다고 칭찬받고 싶지않습니다. 장애인이 지닌 참된 성취로 평가 받는 세상, 휠체어를 탄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왔다고 해서 멜버른의 고등학생들이 조금도 놀라지 않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고 테드 강연에서 이야기했다. 함께 가만한 당신 도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이 책도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제목은 가만한 당신이지만 읽고 나면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하는, 나도 치열하게 공익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동시대를 살아 고맙고 오래 아로새겨질 서른다섯 명의 부고
그들의 뜨거운 생애와 근대적 가치를 이룬 순간의 포착
가만한 당신 은 201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동명의 기획물 중 서른다섯 편을 선별, 개작하여 묶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한국일보 선임기자인 최윤필은 현 시점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논의되고 있는 사안들, 인권과 자유, 차별 철폐와 페미니즘, 조력 자살과 동성혼 법제화 등을 위해 우리보다 앞서 헌신했던 이들을 환기하고자 국내 최초로 부고 기사 연재를 시작했다. 저자는 떠난 자리에 잔물결도 일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을 편파적으로 주목 했고 그들 중 특히 기억하고 싶은 이들의 이야기를 어렵게 골라 서 이 책을 엮었다. 덜 알려졌기에 더 알려져야만 하는 사람들. 이들이 겪은 억압과 불합리한 삶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생을 거의 완전연소한 서른다섯 명을 추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아름답고도 담담한 문체는 ‘부고’라는 형식을 넘어 따스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책머리에
콩고의 마마 -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
전쟁 속에서 끌어안은 인간의 존엄
삶이라는 행운 - 홀브룩 콜트
의사이자 환자로서 혈우병을 치료하다
작은 거인 - 스텔라 영
장애 편견과 고통 앞에서 춤추다
비행하는 인간 - 딘 포터
육체의 해방을 꿈꾼 익스트리머
모성이라는 환상 - 바버라 아몬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자살연구자 - 노먼 파버로
죽음을 이해하는 것으로 예방하다
사랑의 합법성 - 니키 콰스니
동성혼의 법제화를 위하여
사회를 치료하는 경제학 - 우자와 히로후미
안정된 진로를 벗어나 학문의 의미를 찾다
잘려나간 장미 - 에푸아 도케누
여성 할례 금지 운동의 시작
탐욕스러운 환경운동가 - 더글러스 톰킨스
노스페이스 창업자, 국가에 공원을 기증하다
거인 같은 여성상 - 메리 도일 키프
전쟁으로 시작된 여성해방의 상징
잊을 수 없는 기억 - 로저 보이스졸리, 로버트 이블링
챌린저 참사의 비극을 밝히다
자위 해방 - 델 윌리엄스
여성 오르가슴으로 세계를 구하다
색깔 없는 인권 - 존 마이클 도어
1960년대 흑인 인권 투쟁 현장을 누비며
실수로 갇힌 인간 - 글렌 포드
무고한 삶을 오판할 때 벌어지는 일들
생존자에서 조력자로 - 데니즈 마셜
폭력 피해 여성 구제를 위하여
순간을 사는 존재 - 제럴드 라루
이단자라는 오명 속에서 존엄사 합법화에 나서다
젠더 혁명 - 로절린 벅샌덜
관습에 맞선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벤치의 익살꾼 - 에버렛 라마 브리지스
즐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군대 민주화 운동 - 앤드루 딘 스태프
부당한 명령과 처우 개선, 반전운동에 힘써
도둑맞은 행복 - 도리스 필킹턴 가리마라
수용소에서 1600킬로미터를 걸어 가족 품으로
등불을 켜는 자 - 로버트 루시
경찰 내부고발자로 산다는 것
미국의 감시자 - 델머 버그
스페인내전 참전 병사가 본 세계 정치
죽을 권리 - 데비 퍼디
궁극의 자유를 찾아서
진실 없는 사실 - 윌리엄 그린
특종에 취한 언론을 낱낱이 까발리다
자유의 풀잎 - 마이클 존 케네디
마리화나 합법화를 위한 잡지를 발행하다
표현의 자유 - 앨버트 모리스 벤디크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변호사
따듯한 심장의 과학자 - 요세프 랑에
HIV 환자는 실험 대상이 아닌 파트너
일상의 투쟁 - 파테마 메르니시
이슬람 페미니즘의 터전을 마련하다
폭동 아닌 봉기 - 앨빈 브론스타인
수형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분노의 목소리 - 하요 마이어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 나치즘과 시오니즘 비판
감시받지 않을 권리 - 카스파 보든
보편 인권으로서의 프라이버시
무기로 쌓아올린 평화 - 루스 레거 시버드
세계적인 군비경쟁을 폭로하다
진실을 말하는 뼈 - 클라이드 콜린스 스노
유골 분석으로 법인류학을 실현하다
선택과 권리 - 엘리자베스 리비 윌슨
삶에 대한 결정권은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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